J
Juyoung Jung


저자 : 김사량 저작물명 : 김사량_제4부 노마지지(老馬之智) 저작자 : 김사량 창작년도 :


Acción Todo público.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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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서 가자 나귀여!


다음날은 비에 젖은 안개가 자욱하니 내려앉아 날씨를 보 다가 이럭저럭 다섯 시를 넘어서야 떠나게 되었다. 비를 맞 은 다음부터 다리의 상처를 아파하며 발열까지 하기 때문에 S동무는 며칠 더 이곳에서 떨어져 쉬기로 하였다. 이 대신 여기에 출장 나와 있던 분맹(分盟)의 N 동무가 동행하게 되 어 도합 역시 네 명으로 되는 일행이다. 여전한 황토층의 비좁은 길이 어제의 비에 먼지도 가라앉아 보행에는 매우 편하나 군데군데 물이 고여 발을 뽑기도 하고 때로는 나귀 위에 매달려 건너기도 하게 된다. 장마나 지면 강을 이루어 물이 고이기 십상이게 양옆이 흙의 단층을 이룬 곳도 없지 않다. 얼마쯤 가노라면 조그만 버드나무 숲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름 모를 부락을 지나가게도 되었다. 이 부근의 부락 도 대개는 황폐하였다. 소탕전이 격렬히 일어났던 곳으로, 행길이 무너진 집의 흙기와로 어지러우며 높은 홰나무도 시 꺼멓게 타 죽어 가지만 엉성하니 하늘에 걸려 있었다. 부락 을 지나면 길은 다시 푸른 전원의 단층 사이로 대지를 즐러 매려는 듯이 구불거리며 스쳐 들어가게 된다.

어떤 오븟한 마을에서는 청장년들이 모여 서서 총을 하나 씩 골라 쥐고 헝겊으로 닦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눈겨눔도 해보고 안전장치를 비틀면서 서로 떠벌리기도 하며 법석이 었다. 38식 보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일병에게 빼앗아 굴 속이나 땅 속에 묻어 두었던 것을 새로 끄집어 낸 것이 라고 한다. 평시에는 밭을 갈며 씨를 뿌리다가도 일단 유사 시에는 총을 들고 나서는 민병들인 것이다.

중국의 해방전에 있어서, 더욱이 유격전에 있어 이 민중의 조직역량인 민병편의대의 역할은 매우 단단하다. 이들은 여 러 번 침략전을 겪어 오는 동안에 눈치가 열려 적이 쳐들어 오는 정보만 들어오면 부락의 부녀자들과 어린애들을 거느 리고 산속이나 깊은 굴 속에다 피난을 시키고 중요한 양식 과 가정 집물, 가마솥 등속까지 모조리 져날라 감추어 놓고 가축들도 모두 험산으로 몰고 올라가는 것이다. 일병이 와 닥와닥 당도하여 보면 온 동이를 꿩 구워 먹은 자리요 까치 둥지처럼 빈 껍데기였다.

그뿐인가, 조금만 움칫하여도 쾅 하니 지뢰가 터진다. 밭두 렁, 길목, 동구밖, 봉당, 변소, 방앗간 할 것 없이 어디서든 지 쾅……쾅……요란히 울리며 폭발하였다. 그리고 좀 사냥 을 해보려고 나서면 이 산모퉁이, 저 고개, 앞 재등, 귓등성 이에서 난데없이 총질을 해온다.

왜 또 전쟁을 할 모양이냐고 물으니까 지금 군대동무들이 나온 김에 조련(調練)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중에 는 14,5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소년도 섞여 총을 쓸어안고 매만지며 머리털이 허연 영감님도 두서너 명 총을 쥐고 앉 아 싱글거린다. 소년 하나가 보총을 들고 하늘을 날아가는 까마귀 떼를 향하여 쏠 것처럼 겨눔질을 하는데 보니 눈곱 이 더덕더덕 끼인 짜개눈이 심한 결막증이었다. 마침 호주 머니에 안약 용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꺼내 주니까 모두 신기로운지 모여들었다. 눈에 넣으라고 하였더니 소년은 허 급을 떨며 눈을 부빈다. 민병 제군들은 희한한 듯이 낄낄거 렸다. 이때에 농지거리꾼의 한 노병이 어정어정 나서며 젊 은 애들은 그래도 눈이 밝아 괜찮지만 이 늙은 것의 눈이란 밝아야 총질을 할 게 아니냐고 눈을 비집어 보이며 한 손을 내민다. 청맹과니이다. 우리들은 모두 떠들썩하니 웃어댔다.

동구 밖 넓은 터전에서는 민병들이 팔로 군인들의 지도 밑 에 수류탄을 던지는 연습이며 칼 꽂은 총부리를 내대이고 몰려가는 연습, 혹은 엎드려 사격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힘 있는 대로 막 던져 빗나가기 때문에 뻘건 깃발이 자꾸 흔들린다. 그러나 나무 손잡이가 달린 수류탄이 타원형을 그리며 허공을 날아가는 광경은 자못 우람찬 것이었다.

이 마을을 지나서 번번한 산마루채기를 오르고 있을 즈음 우리는 소낙비를 만나게 되었다. 비는 억수로 퍼붓는데 비 피할 나무 한 그루, 집 한 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뒷걸음 질할 수는 없기에 비를 무릅쓰고 산길을 올라가니까 마루채 기 위에 조선으로 말하면 국사당(國師堂)이나 성황당처럼 생 긴 조그만 빈집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어차피 이 안으로 몰려 들어가 비를 피하게 되었다. 그려 붙인 부처의 화상도 없으며 돌미륵 하나 진좌해 있는바 아닌 텅 빈 허청간이나 다름 없었다. 조석(彫石)의 부스러기만 몇 덩어리 흩어져 있 으므로 보아 산민들이 보호신으로 섬기는 우상을 일군이 소 탕 들어온 김에 깨부순 것인지 또는 미신타파의 여력(餘瀝) 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일병들도 여기에서 휴식 하였던 모양으로 토벽에 근등 조장이나 상등병 소림이나 오 장 아무개니 하는 낙서가 지저분하며 그 중에는 배구(俳句) 나 노래 비슷한 문구도 씌어 있었다.

비에 젖은 옷을 벗어 걸고 팔다리를 쓰다듬으며 담배를 피 우고 앉았노라니 N 동무가 내의를 벗어서 펴들고 ”최 동무 생각나나”41년도 5월 소탕 때 말이야. 이렇게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바로 이런 사당(祠堂)에 둘러앉아서 이잡이하던 생각?“ 최 동무는 쓴웃음을 짓는다.

”……”

”이잡이를 하노라면 언제나 밑도 끝도 없이 그때의 일이 생각나거든……”

1941년도 5월 소탕이라면 몇만을 헤아리는 대병력이 동원 되었다고 일본에서도 떠들어 유명하던 대작전이었다. 소위 태항작전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중공 팔로의용군의 정치 간 부와 그 가족들이 주로 되는 비전투원 4,5천이 산골짜기 속 에서 적을 피하여 조반을 지어 먹고 금방 후방으로 떠나려 는 참이었다. 여기서 불과 백리도 안 되는 요현(遼縣) 산중 이었다. 갑자기 누구인지 적군이 내려온다고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놀라 바라보니 아니나다를까 노랑 대가리 일군모가 산 위로부터 발발거리며 몰려 내려오는 것이었다. 동에서도 서에서도 북에서도 적군이 기어 내려온다. 사위를 두른 산 악이 마치 큰 파도를 이루어 흠칠거리며 내려앉는 듯하였다.

졸지의 일이라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였다. 독 수리 비행기까지 두 마리씩 저공으로 나타나 가로세로 하늘 을 찢으며 폭음 소리 요란히 떠돌기 시작하였다.

밤 사이에 일이 벌어진 것이다. 좁은 산골짜기 안이 벌컥 뒤집히기 되었다. 독안에 든 쥐로 전원이 포로가 되지 않는 다면 고스란히 몰살을 당하게 된 위기일발의 처지였다. 무 장대라고는 팔로군 몇 명에 조선의용군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드디어 결사적인 엄호령이 내렸다. 지대장 박효삼 동지를 선두로 의용군은 쏜살같이 뒷산으로 달려 올라가며 적의 십 자포화를 덮쳐 침묵시키더니 우리의 깃발을 꽂아 놓았다.

그리고는 기관총 3개와 보총으로 엄호에 착수하여 연신 산 위로 뽑아 올린다. 일군의 추격을 죽음으로 제지하는 판이 었다.

폭음, 총성, 아우성 소리, 지뢰 터지는 소리에 골짜기 안이 드르렁드르렁 울러 떠나갈 듯하였다. 대포알이 터지고, 기총 이 콩볶듯하며 비행기에서는 폭탄이 떨어진다. 마필(馬匹) 7, 8백도 큰 일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면서 울부짖으며 야단이다. 총에 맞아 창자를 땅에 질질 끌면서도 살길을 찾아보려고 주인의 뒤를 따라 산 위로 올라옴이 더욱 처참 한 느낌이었다. 일병이 쓸려 내려오는 바람에 산골짜기는 좁아들며 줄어드는 듯하였다. 의용군의 엄호전은 더욱 맹렬 하여 필사적이고 일군의 추격도 더욱 다급하였다.

쓰러지려는 것을 서로 붙들어 일으키고 병자는 등을 밀며 어린애는 손을 이끌고 서로 밀거니 당기거니 하며 4, 5천이 뒷산으로 달려 올라가노라니 그야말로 야비규환의 생지옥이 아닐 수 없었다. 김두봉 선생을 동앗줄로 허리를 동여매고 가까스로 산 위까지 끌어올린 것도 이때의 일이며 선생의 어린 따님은 어떤 동무가 등에 업고 허둥지둥 올라갔기에 생명을 건졌다고 한다. 중공 간부의 어떤 부인은 이제는 더 따라갈 기력이 없으니 차라리 일군의 포로가 되어 수치를 보게 하지 말고 당신의 손으로 죽이고 피해 달라고 애원하 며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는 바랑을 벗어 놓았다. 남편이 눈 물을 머금으며 싸창을 뽑아 들고 사랑하는 부인에게 총부리 를 향한 사실도 이때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하여간 의용군의 용감한 엄호전으로 이렇다 할 만한 손상 이 없이 모두 산 위로 올라와 뒤로 빠져 내려가며 퇴각을 개시하였다. 중공과 팔로의 귀중한 생명을 건질 수 있은 것 은 천만다행이었다. 우리 독립동맹과 의용군의 중요한 일꾼 들도 대개는 이 소탕전에 걸려 구사에 일생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냥 추격에 추격이 계속되어 신고는 여간 아니었 다. 할수없이 팔로군 야전사령부 정치부 주임 나서경(羅瑞 卿) 씨의 발언에 의하여 이날 밤중으로 분산퇴피를 단행케 되었던 것이다.

”며칠 뒤에 골짜기 물을 찾아 목욕을 하고 나서 옷을 벗어 보니 이가 비로 쓸 지경이었지요.”

최 동무가 이러면서 웃으니까 내의를 툭툭 털던 N 동무의 하는 말이 ”비가 내려 부근의 사당 안으로 몰려 들어가 돌로 성을 쌓 아 놓고 옷을 털어 보았지요. 아, 이란 놈들이 어리둥절하며 사방으로 막 퍼져 부산하게 돌성벽 위로 기어 올라온다는데 이 꼴이 꼭 포위되었던 우리들과 같은 정경이거든, 그래 모 두 어서 뛰어라, 어서 뛰어라! 이렇게 성원을 하며 한바탕 실컷 웃지 않았소.”

나는 허리를 부여잡고 웃었다.

이런 기막히는 이야기도 이들의 입에서 나올 때는 매우 유 머러스하게 전개되는 것이었다.

비가 멎었다.

아직도 구름이 휘날리는 하늘 위를 요란히 우르렁거리며 B51의 편대가 은빛 날개를 번쩍이며 동북쪽을 향하여 질주 하고 있었다. 우리 근거지의 후방에 있는 항공기지로부터 평한로(平漢路) 폭격차로 가는 것이라고 한다.

─추기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동시에 귀국의 도상에 오른 나는 장 가구로부터 열하 승덕으로 행군해 나오면서 이때의 일을 좀 더 세밀히 캐어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이 소탕전에 있어서 팔로군으로서의 최대의 희생은 야전사령부 부참모장 좌권 (左權)씨가 몸소 돌위작전(突圍作戰)을 지휘하다가 장렬한 전사를 한 사실이었다. 이 용감한 선열의 죽음을 길이 찬양 하기 위하여 전지인 요현을 이로부터 좌권현이라 개칭하였 다 한다.

이때의 우리 의용군측으로 본다면 제 몸도 가누지 못할 노 약 병자, 여성동무 등 40여명의 존재가 무거운 부담이었다.

이들을 완전히 보호할 임무를 이상조(李相朝), 박무(朴茂), 이철중 등 여러 동무가 짊어지게 되었다. 그리운 해방의 조 국에 돌아와 활약하다가 작년 애달프게도 순직한 이철중 동 지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새로운 바다.

해가 지면서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출로로 급 류처럼 빠져 나가는 본대를 따를 수가 없어서 두봉 선생을 비롯한 노약자는 딴 길로 덤불 속을 뚫고 옆산등성이로 올 라온 것이다. 모두 기진맥진하여 턱턱 쓰러진다. 그러나 뒤 로는 일군의 추격이 여전히 다급하였다. 용감하고도 책임감 이 센 인솔자들은 그들을 일으켜 어깨를 걸고 혹은 팔을 잡 아 끌면서 비 내리는 산등성이를 헤맸다. 가다가는 엎어지 고 쓰러지고 어깻죽지에 늘어지며 버리고 어서 성한 사람끼 리라도 달아나라고 애원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어둠이 빗속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멀리서는 접전 의 기관총 소리가 계속 해 일어나고 산밑으로부터는 일병이 몰려 올라오는 구두 소리, 군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우리 쪽에는 대처할 무기라고는 권총 몇 자루가 있을 뿐 한 걸음이라도 더 달려 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싸워 보 지도 못하고 죽는구나 생각하니 서글프기 바이없었다. 절망 이 단애를 이루어 앞을 가로막았다. 하늘도 캄캄해지며 길 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 껴안아 일으키며 떠밀며 당 기며 그냥 산길을 더듬었다.

마침내 어둠 속에 길을 잃고 추격은 등뒤에서 절박하게 되 자 한데 몰려서 퇴피하려다가는 전원이 도살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세 패로 나뉘어 여기서 또 갈라지기로 하였다.

서로 한번씩 껴안고 흐느낀 뒤에 운명이 허락하거든 다시 만나기로 기약하고 동”서”남으로 산상에서 헤어졌다. 인솔 자 가운데서도 그 중 몸이 좋고 날쌔다고 해서 두봉 선생을 필두로 중요한 선배들은 이철중 동지가 인솔하게 되었다.

이상조 동지 등이 인솔한 근 30명은 산밑으로 도로 내려가 일군 본진이 추격차로 빠져 나간 골짜기 속을 뒤따라 나가 는데 성공하였 피할 도리가 없으므로 나온 교육지계였다.

허나 이철중 동지는 보행이 여의치 못한 일행을 이끌고 섣 불리 피해 보려다가 도리어 실패를 볼지 모른다는 판단 밑 에 용감히도 적의 포위권 내에서 잠적할 방책을 세웠었다.

그날 밤으로 적이 전진하려니 믿었기 때문이다. 토굴과 덤 불이 있어 그래도 몸을 감추기에 십상이었다. 야음을 이용 하여 그들은 덤불 속에 기어들었다.

이날 밤은 그나마 무사하였다. 다음날 새벽의 일이다. 노랑 대가리(일병)들이 여러패로 나뉘어 셰퍼드를 앞세우고 사방 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미처 달아나지 못했던 산민들은 도망치다가 죄없이 불을 맞고 쓰러지고 부녀자는 발견되는 대로 붙들려 간다.

”팔로 나오거라!”

”팔로야 나오라!”

이 고함소리는 산등 위로 골짜기 밑으로 덤불 속으로 토굴 안으로 갖가지 산울림을 일으키며 뒤범벅이를 친다. 그들이 잠복해 있는 덤불을 향하여 적병놈들이 소리소리 외치기도 하였다. 셰퍼드는 컹컹 사납게 짖어 댄다. 놈들은 미심쩍어 덤불속을 향하여 사격을 해왔다. 이때에 그냥 소리를 죽이 고 숨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미 발견된 줄로 알고 이왕이면 싸워 보다 죽는다고 몸이 싱싱한 두 동지가 뛰어 나갔다. 보기 좋게 기관총 소사에 걸려 진광화(陣光華) 동지 는 넘어지며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고 석전(石田)동지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철중 동지는 동요하지 말고 꼼짝 말도 록 지시하였다. 그제야 놈들은 끝장낸 줄로 알고 대를 거두 고 돌아간 것이다. 우리의 존중하는 두봉 선생은 이렇게 되 어 오늘의 영광된 조국에 살아 돌아오셔서 민주건국에 힘있 는 공헌을 하시게 된 것이다. 같이 행군하며 이때의 일을 물으니까 허정숙 여사는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만치 따라가는 것도 그때 달음박질을 멋지게 격난한 탓 이지요.”

이 산골짜기를 내려 서서 얼마쯤 가니까 조그만 부락이 하 나 깔려 있는데 초입에 무너져 가는 성문이 서 있고 그 토 벽에 '조선독립만세 조선의용군' 이렇게 횟가루로 아름차게 쓴 글씨가 눈에 번쩍 띈다. 최 동무가 돌아보며 ”왜 놀라시오. 우리 근거지가 얼마 멀지 않은 증거입니다.”

성문 옆 아카시아 그늘 밑에 휘장을 드리운 노점이 있다.

행인들이 짐을 내려놓고 앉아서 서퇴를 하며 차를 사 마시 고 있다. 우리도 여기에 나귀를 멈추고 그늘 밑에 기어 들 어가 다리 쉼을 하게 되었다. 소낙비 쏟아지듯이 쓰르라미 가 운다. 조선보다는 퍽 절기가 이른 모양이다.

오늘은 바쁜 길이라 앉은 김에 쇼빙(燒餠)과 복숭아로 요기 를 하기로 했다. 전과같이 여기서도 촌중(村衆)과 어린애들 이 우리의 셰퍼드 군을 구경하러 온다.

N 동무와 현 동무가 어린애들과 같이 놀면서 무슨 노래인 지 우스꽝스레 노래를 부르니까 어린애들이 웃음을 띄고 좋 아하며 따라 부른다. 촌중과 행인들도 히죽히죽거리며 때로 는 소리를 내어 웃기도 한다. 무슨 노래냐고 물으니까 최 동무의 말이 근거지까지 70리의 험한 산길을 우리 군정학교 학원들이 7만 근의 소금부대를 등에 지고 나르면서 부르곤 하여 이 일대에 널리 유행된 노래라고 한다. 곡조는 중국의 아리랑이라고도 할 양가조였다. 35리를 져 오면 또 딴 학원 이 받아 지고 35리를 근거지의 동맹 직영 31상점으로 져 날랐다. 이 지방에는 소금이 매우 귀하기 때문에 비밀이 적 구로부터 들여 온 것을 전학원이 동원하여 운반함으로써 경 제적 자립책의 일조로 삼은 것이었다. 근거지에서는 우리의 군복과 우리의 모자, 배낭, 신을 만들기 위하여 방사공장도 돌리며 식량을 장만키 위하여 제분소도 경영한다고 한다.

이 밖에도 곤란한 식량문제를 행동하기 위하여 이네들은 태항산 그악한 돌비탈을 캐어 화전을 일구고 8백 이랑이나 되는 땅에 감자와 호박을 심고 강변 모래밭을 갈아 일년감 과 붉은 무를 기르고 가을에는 심지어 도토리까지 줍는 형 편이었다.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꾸려 나가자! 이것이 또한 중요한 구호의 하나였다. 이러한 고역이 즉 우리의 원수 일 본 제국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고생이고, 이것이 곧 우리가 원수 일본제국주의를 두드려 부수고 우리 조선민족을 독립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의 하나임을 절실히 깨닫고 있기 때문 이었다. 적이 토벌 올 때 신을 신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 각에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산허리에 부대를 파고 벼랑 밑 에서 도토리를 찾았다고 하니 아니 눈물겨운가”도토리 한 알이 총알을 줍는 것처럼 반가웠고 등골이 뻐근한 소금짐이 기관총을 얻어 멘 것처럼 기뻤을 것이다.

어쨌든 수염발이 잡히기 시작한, 말씨도 잘 통하지 않는 학원들이 긴 행렬을 지어 소금짐을 등에 지고 영치기영치기 하면서 져 나르는 광경은 일대가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물가에서 물을 얻으려 할 때나 마을에서 숨을 돌 릴 때며 산사람들과 마주칠 때에 색한 일이 두간두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의용군에 대한 인식을 중국민중에게 깊이하 기 위하여 이 노래를 지은 것이다. 이 노래를 서로 화창하 며 짐을 져 나르기도 하고 때로는 부락에 들려서 꽹과리를 치며 촌중을 모아 놓고 예의 솜씨좋은 연극도 보여주고 무 용놀이도 구경시키고 노래를 배워 주기도 하고 조”중 두 민 족의 친선과 해방전을 위한 고동연설도 하였다. 그들은 이 렇게 노동을 하면서도 정치공작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다.

이래 이 근방에서는 조선의용군이라면 대인기이며 또 이 노 래는 애 어른없이 모두 귀에 익히 알고 있다. 어느덧 코흘 리개 애들이 일렬로 서서 N 동무의 지휘 밑에 참새 떼처럼 합창을 하고 있었다. 얼른 들어 재미있는 조선말식 중국말 노래로 우진파격으로 불러야 제격인 것이다. 참고삼아 불러 보자면 다음과 같은 노래다.

팔로군과 의용군은 단단히 좋아해(八路軍和義勇軍相好大大 的) 니데나 워데나 형제나 한가지(爾們那我們兄弟那一樣的) 둘이서 총을 메고 일본 족치니(”着槍站一起共同打日本) 왜놈이 아이쿠 데이쿠 도망이 갔다구(鬼子害伯”了”了的有) 짐승 같은 왜놈아 올려면 또 오라(野獸樣的鬼子又要來掃蕩) 의용군은 정치공세 전개하고(義勇軍農開了政治攻勢) 팔로군은 유격하며 민병은 지뢰 묻어(八路郡打遊擊民兵埋 地雷) 왜놈이 지뢰를 메시메시 꺼꾸러진다구(鬼子地雷메시메시死 了的有) 백성님네 우리의 어머니 한 가지(老百性是我們的母親一樣 的) 백성님네 없으면 우리도 메유데(沒有老百性那有我們的) 당신네는 군대 돕고 군대는 백성 사랑해(老百性擁軍軍隊愛 民) 니데 생산 워데 전쟁으로 파시스 멸망(爾們生産我們打拔消 滅法西斯) 금년은 우리들 승리를 하리(今年是我們的勝利的年頭兒) 백성님네 곡괭이 메고 우리나 총 들고(老百性拿鋤頭軍隊拿 槍桿) 퉁퉁대루 왜놈을 때려 부숴(統統的打死小日鬼) 중국인민 조선인민 해방 만세로세(中國人民朝鮮人民解放萬 歲) 매일 하던 버릇인 노상의 개잠을 그만두고 다시 길을 떠나 부지런히 걸음발을 옮기었다. 여러 날 동안의 보행에 단련 되지 못한 걸음걸이라 발이 부르트고 발가락에 염증이 생겨 저리고 쑤시며 게다가 감기 기미도 있어서 언짢으나 이제부 터는 비교적 좋은 길에 올라섰기 때문에 걸음새가 더디지는 않았다. 일군이 소탕 들어왔을 때 수송으로 닦아 놓은 길이 라고 한다. 오래간만에 비가 쏟아졌기 때문에 전원은 푸르 싱싱하게 생기를 띠고 밭에는 농부들이 떨어 나의 물곬을 치기에 부산하였다.

집으로 돌아가거나 장거리를 찾아가는 바쁜 걸음의 나귀 바리들이 방울을 울리며 오고 간다. 양떼를 몰고 산으로 올 라가는 소년들의 커다란 농립이 나비처럼 푸른밭 사이를 너 울거린다. 어디로 가는지 총총걸음으로 배보(背褓)를 짊어진 군인들도 지나간다. 길이 좋아지면서부터 한결 이 벌길에 사람 그림자가 많이 보이는 것이다. 국내의 대륙을 남북으 로 헤매는 노마(駑馬)의 여행길. 이제 얼마 남지 않고 보니 새삼스레 또다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오락가락 한다.

일로평안을 빌며 정거장에서 떠나 보내던 그리운 동무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떠나기 전날 밤 모여 앉아 별주 (別酒)를 같이 나누던 동무들의 말소리가 들려 온다. 진심으 로 모두가 나의 출분(出奔)을 축복하여 주던 선량하고도 우 애 깊은 동무들이었다. 지금쯤 어디에 모여 앉아 나의 거취 를 근심하며 걱정하고 있지나 않는지”이렇게 미더운 동지 들의 따뜻한 보호와 인도 밑에 일군의 봉쇄선을 무사히 넘 어 태항산중을 나귀를 타고 건득거리며 들어가고 있음을 어 떻게든 알려 주고 싶은 일이었다.

동무들이여 잘 있거라!

나의 이 행복된 탈출행이 도리어 사랑하는 동무들의 신상 에 불행을 가져오지나 않았을까”

이 동무들과 이 산중의 즐거운 길을 나란히 나귀를 타고 들어가고 있다면 얼마나 기쁘랴……심지어 이 기나긴 이국 산중의 노상에 올라서며 보고 느끼고 들은 일이라도 이 동 무들에게 고스란히 그대로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일이었다.

모두가 우리들에게 주는 산 교육이요 감격이요 암시요 고 무이기 때문이었다. 단시일이나마 나는 벌써 여기서 새로운 세계를 보았으며 새로운 백성의 대지를 거닐고 있으며 새로 운 사람들을 대하였으며 새로운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는 것이다. 원수를 물리치고 인민을 건지고자 다같이 일어나 우렁찬 혁명의 함성 속에 빛나는 새날을 맞이하는 세계였 다. 그것은 가장 고귀한 정의와 진리의 힘이 밑바닥에 뿌리 를 박고 인민을 키우는 대지였다. 그것은 피와 굶주림의 지 루한 어둠 속을 지나왔기 때문에 새로 맞이하는 광명을 온 대지 위에 펼쳐 넓히기 위하여 싸울 줄을 알게 된 사람들이 었다. 여기서 새 정신, 새 생활, 새 문화가 이룩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의 별이 빛나고 자유의 깃발이 퍼득이는 세계의 6분지 1에 연달린 하늘이었다.

인민의 최하층에서 일어난 혁명!

최악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키워진 싸움!

이리하여 각고(刻苦) 반반 세기 동안 인민의 환호와 지지 아래 대하처럼 저지할 줄 모르고 외적의 철조망을 뚫고 전 제계급과 군벌의 쇠사슬을 끊으며 나가는 힘! 드디어 중국 인민은 일어난 것이다. 이 영예는 곧 중국인민의 영도자 모 택동 선생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요 이 영광은 중공의 머리 위에 팔로군의 깃발 속에 빛날 것이다. 인민이 일어나 제 나라를 다시 차지하게 된 민족은 얼마나 행복스러운 것인 가”모름지기 이 중국의 혁명과정은 거의 같은 단계에 처해 있는 우리 조선에 무한한 경험과 교훈을 제공하는 바다.

우리의 조국을 쇠사슬로 얽어 맨 파쇼 일본의 팔죽지에서 는 이미 맥박이 사라져가며, 우리 3천만의 가슴 동아리를 내리 밟고 있는 놈들의 모진 흙발에서는 거의 기력이 잦아 가고 있지 않는가.

일어나라 조국의 겨레여!

동무들이여 앞으로 나서라!

칠순 노모의 생각이 문득 일어난다. 어머니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버드나무 선 조그마한 섬동네의 해도 안 드는 침침한 방안에 앉아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지라도 부모를 사랑하는 아들의 옛일을 그리며 안전한 탈출하기만 축원하 고 계실까”집안에 어린애의 울음소리와 물소리가 떠나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였다. 어린 손주애들을 무릎 위에 앉히고 물레질을 하시며 멀리 떠난 이 아버지의 일을 옛말처럼 들 려주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것을 보고야 죽어도 죽는다던 어머니지만 어디 편찮아 누워 계시지나 않는지”

밀물이 들어오면 버드나무 그늘 밑에 물매암이가 떠도는 샛 강에서 어린애들은 물장난을 치며 놀고 있을 것이다. 일년 감 농사라도 한몫 해보겠다던 연약한 아내는 구차한 살림살 이를 메워 나가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을까”

끄랴 어서 가자 나귀여!

”따따따─!”

나는 머릿속을 휩싸고 도는 여러 가지 상념을 후려갈기려 는 듯이 나귀 잔등에 채찍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 한 생각은 어느덧 나를 멀고 먼 어린이의 시절로 이끌고 갔다.

나도 어렸을 때 때때로 배를 타고 이 동네 앞 두루섬 고모 네 집으로 놀러갔었다. 갈밭으로 나와 더벙게를 잡느라고 질벅거리기도 하고 옷을 벗어 던지고 미역을 감으며 동막이 놀이도 하였다. 때로는 흐믓한 흙냄새가 떠오르는 풀 언덕 에 누워 떠다니는 고깃배를 바라보면서 창가를 부르며 놀았 다. 흰 돛을 올린 풍선이 노래를 물위에 띄우며 강 한복판 을 달리는 광경도 못내 상쾌하였다. 나의 아름다운 회상은 차차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이 섬 앞쪽에는 병풍을 세운 듯이 깎아지른 만경대의 절벽 이 깊은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멋들어진 노송 이 그 잿등 위에 몇 그루 일어서서 바람에 흐느적거렸다.

단애(斷崖)의 바위 사이에는 절기를 찾아 진달래, 개나리, 도라지, 산딸기 등 가지각색 초화가 돋아난다. 그리고 제철 을 따라 이 푸른 하늘에는 종달새가 높이 뜨고 메추라기, 미라부리, 파랑새들이 지저귀며 노래하고 뻐꾸기도 산속에 숨어서 한나절을 울었다.

나는 이런 풍경에 지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꼬리를 휘 저으며 풀을 뜯는 송아지와 격수가 되어 보기도 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버들피리를 불기도 하였다. 배가 고플 때는 아 무 밭으로나 기어 들어가 참외를 따고 가지를 찢고 무를 뽑 으면 되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고모님과 사촌누이가 벌써부터 감자를 구 워 놓고 기다리고 있다. 나는 감자를 입에 넣고 오무적거리 며 사촌형이 겨울 한철 고기잡이를 나가려고 뜨는 그물 구 경을 한답시고 연신 붙어 돌며 방해를 놓았다. 사촌형은 시 물시물 웃으며 콧노래를 부르다가는 갑자기 으악 소리를 질 러 나를 홀딱 놀라게 하고 나서 은근히 '저리 비켜!'하였다.

이 구경도 싫증이 나거든 동네의 벙어리애 아빼를 집으로 찾아가 둘이서 서로 손짓 몸짓으로 시늉을 하며 한참을 같 이 웃었다. 나는 아빼를 무척 좋아하였다.

내 아이놈도 요즘 섬에서 이렇게 즐거이 지낼 수가 있을 까”

달도 없는 밤에는 고모님의 무릎 위에 머리를 얹고 누워서 옛말을 들었다. 곱살한 얼굴에 조굴조굴 주름살이 진 고모 님은 갖가지 목소리를 다 내면서 무섭고 슬프고 우스운 얘 기를 얼마든지 할 줄 알았다. 때로는 어머니와 같이 채전을 다루며 뼈가 부스러지도록 고생하던 시절의 이야기도 옛말 처럼 들려주었다. 고모님은 올케인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나 이 섬동네로 시집을 온 것이다. 그때 내 어머니를 친어머니 처럼 여기고 좋아하였다. 하나 고모님은 밭 일에 지쳐서 몇 마디 안짝에 그만 부스스 잠이 들어 버리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살금이 빠져 나와 사랑방으로 건너갔다. 거기 서는 수놓이를 하느라고 모여 온 섬 처녀애들이 나를 환영 하였다. 외간방에는 화대를 두셋씩 세워 놓아 영등같이 불 을 밝히고 둘러앉아서 밤이 깊도록 수를 놓는다. 붉은 비단 천 바탕에 파란실, 노랑실, 분홍, 초록, 연두, 갖가지 명주실 로 사군자에 사슴이니 소나무, 학, 원앙새를 수놓아 베갯모 도 만들고 돌띠도 만들고 꽃주머니도 굴개도 만들었다. 그 러면 어머니들이 이것을 장날 평양성내로 가지고 들어가 팔 아다가 딸 시집 보낼 자장도 하고 살림살이에도 보태는 것 이었다.

이 처녀애들은 보통 때에 보면 그렇게도 얌전하고 수줍은 듯하나 저희끼리 모여 앉으면 아주 딴사람처럼 명랑하고 쾌 활하였다. 서로 찧고 까불고 해들거리고 꼬집고 야단이다.

옆에 앉아 이런 번화한 광경을 자못 놀라운 눈으로 말똥말 똥 쳐다보던 일이 생각난다.

그들은 돌려 가며 내게 옛말을 들려주기도 하고 친절한 애 는 내 버선에 꽃도 수놓아 주고 모자에 솔다리를 달아 주기 도 하였다. 때로는 시집 갈 날이 가까운 애를 들어 붙어 놀 려주기도 하고 어느 총각이 장가 간다더라고 의미있게 동무 를 성화시켜 울리기도 하다. 그러면 수다스런 애는 쩍쩍 입 을 다시며 ”나는 이 조꼬맹이나 장가 간다면 울지 울 이유가 없을 것 같구나!”

하여 다시 웃음판을 꾸며 놓았다. 나는 머리끝까지 붉어졌다.

모두가 불빛에 얼굴이 능금알같이 불그레하고 까만 눈이 정기롭게 빛나고 손길이 물고기처럼 넘나듦이 한없이 화려 한 느낌이었다. 그 중에도 나는 우리 사촌누이가 제일 이쁘 고 일도 제일 곱게 한다는 것이 큰 자랑이었다.

어쩌다가 처녀애들이 나를 가지고 놀 양으로 얼굴을 들이 대며─그 중에서 살눈썹이 긴 쌍겹눈의 처녀애가 이러기를 좋아하였다.

”요 쪼꼬맹이야, 넌 섬 처녀한테 장가 안 들라니”……색동 저고리 입혀 꽃굴개 만들어 씌워 가지구 업고 다닐 테루 다!”

이러한 또 한 애가 나를 끌어당기며 ”안 준다. 시러배 계집애에게는 못 주겠다!”

하여 또다시 한바탕 까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불현듯이 이런 옛날의 하염없는 가지가지의 일이 생각나니 어찌된 일일까”어린애 큰놈이 바로 이 시절의 나와 비슷한 나이로 섬으로 나갔기 때문일까”하기는 내게 있어서 이 어 렸을 때의 섬 생활이 유일한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였다. 그 러나 아이놈이 나와 같은 이러한 아름다운 세계를 즐기기에 는 너무도 시달림과 설움이 많은 오늘의 섬이었다. 이 감미 로운 목가를 어느 놈이 빼앗아 갔으며 이 행복된 생활을 어 느 놈이 짓밟았던가”

보름이 가고 한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가 고 모의 저고릿감을 끊어 가지고 배를 타고 섬으로 나오셨다.

고모님은 신발도 못 신고 뛰쳐 나가 어머니를 얼싸안으며 어린애처럼 캐들거리며 좋아하였다. 본디 늙어도 애티가 떠 나지 않는 그였으나 그것은 정녕 그리던 친어머니를 맞이하 는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도 고모님의 잔등을 두들기 며 기뻐하신다. 아─그리운 고향, 그리운 사람들이여! 내가 다시 고향에서 그들을 만날 날이 언제나 올까, 만약에 이 기쁨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그것은 정녕 내가 원수의 총에 거꾸러지는 날일 것이다. 아무렇게서라도 싸워 이겨 돌아가리라! 내 어머니를 껴안고 어린애들을 쓸어 부등키고 동무들을 다시 만나고 누이들과 고모님을 보게 되지 못함이 과연 있어서 될 일일까”그동안 너나없이 우리들의 살림에 는 풍상이 많았고 고초는 심하였다. 떠나기 얼마 전 나는 평양 길가에서 우연히 이 섬동네의 사촌누이를 만났었다.

때 묻은 무명저고리를 후줄그레하니 걸친 채 등에는 어린애 를 업고 머리에는 짐을 잔뜩 이고 있었다. 그 옛날의 탐스 럽게 빛나던 검은 머리는 흩어지고 호수처럼 맑기 바이없던 눈은 정기를 잃었으며 언제나 그칠 줄을 모르는 웃음이 터 져 나오려던 도톰한 입술이 핏기 하나 없었다. 화려하고도 슬기롭던 인상은 고생에 지치고 지치어 그 자취도 알아볼 길이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까지 일본의 어느 탄광으로 잡혀갔기 때문에 더욱이나 간고해진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노라고 날마다 밤 을 새워 가며 열두 새 무명을 짜가지고 나왔노라고 하였다.

눈에는 이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병어리 아빼네는 벌써 전 에 만주로 떠났고 나를 놀려 주기 좋아하던 쌍겹눈의 색시 는 남편을 공출놀음에 때워 놓고 고생한다고 하였다. 아─ 어째서 이런 일이 그대로 있어 될 것인가”사촌누이의 얼굴 속에 또다시 어여쁜 웃음빛이 떠오르고 아빼네도 다시 제 고향으로 땅을 찾아 들어오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쌍겹눈 의 색시의 남편도 감옥에서 나오고 누이의 사랑하는 이도 생지옥에서 솟아 나올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와야 할 것이다.

오직 이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살아 돌아갈 생각을 하느니 목숨을 바치고 싸워야 하리라. 싸우리라! 어서가자 나귀여!

”이쪽으로 갑시다!”

하는 N 동무의 소리에 그제사 나는 화닥닥 놀라 자신으로 돌아왔다.

5 de Octubre de 2023 a las 00:37 0 Reporte Insertar Seguir his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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