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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young Jung


저자 : 김사량 저작물명 : 김사량_제1부 탈출기 저작자 : 김사량 창작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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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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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마전(伏魔殿)의 북경반점(北京飯店)


제국주의 일본의 금면류관 위에 해가 저물어 가는 1945년 3월의 북경.

동양 사람으로는, 더구나 조선 사람의 신분으로는 발을 들 여놓기조차 어려웠다는 호사로운 북경반점이 마치 조선인 합숙소처럼 되어 있었다.

화중 화북의 여러 도시와 오지로부터 안전지대라고 찾아 몰려온 사람들로 들끓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패전한다면 일본 제국주의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옆구리에 피묻은 돈이 수두룩한 사람들뿐이다.

그 중에는 미어지게 배가 부른 아편장수도 있고 칠피구두 를 신고 삐거덕거리는 갈보장수도 있으며 혹은 화북권으로 교환하러 온 이른바 사업가, 다시 말하면 송금부로커─그리 고는 대동아성 촉탁이니 군 촉탁, 총독부 총탁이라는 명색 모를 사내와 이 밖에도 헌병대니 사령부의 밀정 등등 별의 별 종류의 인간들이 다 들고 날치는 것이었다.

상해를 중심으로 악랄한 수완을 휘두르고 있다는 헌병대의 어떤 밀정은 새로 150만원인가 주고 사들인 자동차에 기생 을 싣고 어디론가 드라이브차로 떠나며, 동경을 무대로 활 약했다는 전 헌병보조원은 3층에 일본 계집을 데리고 살면 서 4층에 새로 얻어 둔 카페걸이 못미더워 허덕거리며 오르 내리고(이 사내는 해방이 되자 우리 의용군이 산해관에서 체포하였다), 서주서 돌아온 잡곡장수는 소위 신여성을 첩으 로 얻어 데리고 조용한 육군반점으로 옮아가며, 남경서 왔 다는 무슨 회장인가는 급전직하로 떨어져 가는 돈값을 걷잡 을 길이 없어 시계니 보석이니 알지도 못하는 골동품을 사 들이기에 분주하며 그 외에도 돈을 뿌리며 요리집으로 나가 는 패거리, 회의(도박)차로 밀려 나가는 패거리, 그리고 이 방에서도 쑤군쑤군 로비나 복도에서도 모여 서서 쑥덕거린다.

뿐만 아니라 조선인 총영사 격이라는 영사관 끄나풀은 아 침낮으로 드나들며 자칭 대정객연 호화로운 연회를 베풀고 있으며 어느 박스에서는 충실한 애국주의자가 미군의 공세 에 대하여 이를 갈며 떠벌리고 무슨 문화단체의 이름을 팔 아 모은 기부금으로 어떤 문필 정치가는 신새벽부터 취해 돌며 새로 들이닿은 여장수들은 여기저기서 주워 얻은 돈으 로 파리의 화장품을 사들이기에 골몰이다.

여기에 새로 조선서 ××악단이라는 군 위문 패거리가 당도 하고 또 앞서 장가구로 공연하러 나갔다던 ×××가극단 일 행까지 쓸어 들어오니 정녕 정신을 차릴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고지지한 주제에 진기름으로 머리를 마늘쪽처럼 갈 라 붙인 예술가씨와 음악가양들이건만 무슨 재주에서인지 한번 나갔다 돌아올 때면 구두가 새것이 되고 두 번째 나갔 다 올 때는 옷차림이 달라지며, 세 번 만에는 향수 내가 코 를 찌르게끔 되니 그야말로 눈알이 빙글빙글 돌 지경이다.

이와 같은 북경반점의 236호, 이것이 내 방이었다. 아니 그것도 숙객이 폭주하기 때문에 방 한 칸이 독차지되지 못 하여 내가 생면부지의 K씨 방으로 굴러 들어오게 되었던 것 이다. 생면부지라고는 하나 사실인즉 며칠 전 남경으로 내 려가는 길에 들러서 이삼일 머무는 동안 로비에서 여러 번 대하던 얼굴이며, K는 K대로 나를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여간 새로 인사를 마치고 방안에서 저녁을 같이 하며 맥주가 거나하게 떠오르게 되자 지나온 과거의 편력을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의 허황함이 역시 이 반점 초야부터가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느낌이 크다.

화중에서 잡곡장수를 하여 얼마간 돈을 모아 가지고 올라 와 4개월 동안이나 이 반점에 머물면서 거처할 집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도 집을 구하러 나가는 길은 볼 수 있고 무슨 심사라도 편치 않은 일이 있는지 아침부터 밤까지 웅크리고 앉아서 애매한 맥주 대배로 벌컥벌컥 들이 키는 터다.

자신의 호언에 의한다면 언젠가 신문 지상에도 보도될 법 하지만 7?7(중일)사변의 하나의 도화선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천진시 정부 점령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중의 하나였 다. 혹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이 중국 천지에는 이런 대언장어파가 하도 많으니─혹은 정말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일수 그럼직도 하여 보이 는 인품이었다.

어쨌든 이런 사람과 한방에서 침식을 같이하게 되었으니 역시 중국이로구나 하는 느낌도 느낌이려니와 아이러니도 어지간하다. 그러나 이 사내 덕분에 나는 이 북경반점에 드 나드는 사람과 숙객들에 대하여 비교적 정확한 판단과 분별 을 가지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내야 일이 그렇게 거창스레 될 줄이야 알았소……“ K는 거쉰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하며 껄껄거렸다. 자랑도 아니요, 뉘우침도 아닌 수호전 식의 낭인을 자처하면서의 술회였다.

비록 괴문이나마 이 천진시 정부 점령사건이란 아마 조선 인 좌익사에서는 커다란 페이지를 차지할 일의 하나일 것 같다. 유명한 V라는 사내가 그 당시 중국 침략정책에 적극 주의를 쓰던 일본 관동군으로부터 밀파되어 천진에 들어와 부랑인, 양차(洋車)꾼, 거지 이런 것들을 약 2백 명 모아 놓 고서 만두로 배불린 뒤에 총을 한자루씩 메워 가지고 시 정 부를 갑자기 들이쳐 점령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V 선생은 제법 시정부 주석의 의자에 걸터앉아 서 일본인 기자단과 회견이랍시고 하였다.

K는 참모장 격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영문은 모르고 진 짜 주석이 제 방으로 찾아 들어와 보니 웬 모를 녀석이 제 자리에 앉아서 노상 성명을 발표하고 있어 눈이 휘둥그래졌 다. 가(假)주석 V는 그의 귓바퀴를 잡아 쥐고 몇 걸음 끌고 나가다가 꽁무니를 걷어차 내쫓고 말았다.

그러나 북지파견군의 사전 양해를 얻어 두지 못하였기 때 문에 이 일을 알고 일군들이 총을 메고 쏟아져 오는 바람에 성명서를 읽다 말고 뒷문으로 빠져 화물차로 삼십육계를 놓 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달음으로 통주까지 달려가서 절간을 한 채 점령하고 새로 정부를 차려 놓았으니 그 이름이 가로 되 화북농민 자치정부라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북경, 천진 등지에서 민중들이 연 일연야 대 시위운동을 일으키며 한간대적(漢奸大賊) 왕모 〔汪精衛〕를 잡아 죽이라고 소리 높이 외친다.

이 협잡정부 주석 왕인즉 두말할 것 없이 바로 V 그자이며 이를 토벌한다는 일이 소위 통주사변을 이루어 이것을 구실 로 일본군의 진격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때의 내 계획인즉은 한 대는 시 정부을 점령하고 한 대 는 은행을 점령하여 몇백만 원 검쳐 쥐었다가 군세 부득이 달아나게 되면 하다못해 저 감숙성(甘肅省)까지라도 달아나 거길 근거지로 중국 천지를 호령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었다면 요즘 좀 좋겠소”“ 생각할수록 부아가 떠오르는지 대배를 들어 한입에 들이키 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조그만 눈을 찌기득한다.

”왜 못하였소?“ ”대장도 그건 강도와 같다는구만…… 놈의 나라 시 정부를 치는 것은 강도가 아닌데……”

하면서 K는 또다시 껄껄 웃어댔다.

이 북경반점을 복마전이라면 나는 정녕 마왕의 방으로 굴 러 들어온 듯하였다. 혹시 내가 이 사내에게 은연히 감시를 받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에 들기도 한 다. 경각성이 너무도 단단하기 때문이었다.

이때에 노크 소리가 들리면서 쑥 들어서는 그림자를 보니 먼젓번 들렸을 때에 인사한 기억이 있는 화중에서 백화점인 가 하는 사내였다.

”아 오셨구먼요! 이렇게 돌아오시는데 무얼 안 오실 게라 고들……”

혼잣소리같이 놀라는 말투였다.

가슴이 덜컹하였다. 남경에 내려간다고는 하지만 필경 어 디로든지 빠져 새리라는 소문이 돌고 있지나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불안한 기분이 엄습하였다.

그 사내가 나간 뒤에 K더러 슬며시 물어보니까 그는 이렇 게 말하는 것이었다.

”뭐해 먹는 자인지 글쎄 알 수가 있소.”

피해망상인지는 모르나 등줄기가 쭈뼛하였다.

사실 나는 서주와 남경에서 보기 좋게 실패하고 올라온 길 이었다.

남경의 P군과 대강 한 약속이 있었으나 퍽 오래 전의 일이 었기 때문에 불안한 끝도 없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P군이 내가 오기를 기다리다 못해 먼저 떠났다면 되돌아 올라오며 서주에 들리리라 하였다. 그러나 남경에 닿아 P군이 근무하고 있는 상행(商行)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매우 대답이 의심스러운 것이 세세한 것을 알려거든 찾아오 라는 것이었다. 그래 양차(羊車)로 달려가 주인(조선인)을 만나 물어 보니, P군이 이하 칠팔 명 젊은이가 거취불명이 라 한다. 그것이 겨우 10일 전의 일이었다. 여기서 나의 오 작교가 끊어지고 말았다. 연 사흘 동안 헌병대와 영경(靈警 =지역 경찰)이 총출동으로 수색망을 쳤으나 종적이 묘연할 뿐더러 서주에 있던 S군 이하 삼사 명도 같이 없어진 듯하 다는 말에 거듭 놀라게 되었다. 이 S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번 귀국하여 P군과 같이 나를 집으로 찾아왔을 때 내가 도중(渡中)하게 된다면 저도 행동을 같이하기로 서로 약조하 였던 사이이기 때문이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도착한 날부터 밤마다 새벽마다 요란히 울리는 공습경보에 애꿎게 신경쇠약만 걸릴 지경이었다. 이왕 내친 김에 상해 로 내려가 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정치공작의 중심지이니만큼 무슨 좋은 길이 열림직도 하다 는 막연한 기대에서였다. 아닌게아니라 지난해 도중하였을 때 7월 한달을 상해에서 지내는 동안에 중경(重京)측의 공 작원이라고 칭하는 청년에게 호텔로 방문을 받은 일이 있었 다. 그러나 상해라는 도시가 도시요 또 백귀암행(百鬼暗行) 의 시절이니만치 이 청년이 일경의 끄나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는 바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나대로 의 조그만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조선의 독립이 조선을 떠나서 있을 수 없으며 조선 민족의 해방이 그 국토를 떠나서 있을 수 없느니만치 왕성 한 해외의 혁명역량에 호응할 역량이 국내에도 이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국내에서 배겨나지 못하게 되어 망명 하는 이는 별 문제로 하고 나와 같이 국내에 발을 디디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일부러 망명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피요 안일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제1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곳이면 또 모르려니와 몇천 리 산 넘고 물 건 너 대후방의 중경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보다 더 비겁한 도 피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경이란 곳에 매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야말로 구도자의 성지가 아니요 반동의 거지인 아시아의 마 드리드인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신성한 이익을 배반하여 투항과 퇴각의 일 로로 만리 오지에 도망해 들어가 내전의 흉계를 꾸미기에 영일(寧日)이 없는 반동정부의 수도, 이런 정부의 뒤를 창녀 처럼 따라다니며 장개석의 테러단으로 유명한 남의사(藍衣 社)와 CC단이 던져 주는 푼전으로 목을 축여 가는 행랑살 이 임시정부 선생들의 독립운동 영업집에 찾아 들어가기에 는 너무나 계산에 어두웠다. 일껏 배워야 장개석의 매국흥 정이며 독재간계(獨裁奸計)와 테러행사일 터니 가소로운 일 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실상 듣누리없이 재중경 임시정부의 파쟁과 자리싸움이 귓 결에 들려 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을 다시금 새롭게 하면서 돌아와 보니 때 는 나날이 정세가 급박해져 붓대를 꺾고 학교 일에나 묻혀 있을 수도 없게끔 되었다.

더욱이 비좁은 평양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문단인으로 보아 미미한 존재나마 그냥 방임하고자 하지 않았다. 게다가 중 국에서 돌아온 뒤부터는 일경의 주목과 내사(內査), 감시가 일층 더 심해진 것이다. 학도병으로 내몰려 서주 근방에 나 갔던 조카가 나를 만나 본 지 몇 달 안 돼 탈주한 사실이며 숙현(宿縣)에서의 헌병대 놀음, 그리고 상해에서의 1개월 이 런 일 저런 일이 모두 놈들의 의심을 사기에 꼭 알맞았던 것이다. 하루는 중학 시절에 스트라이크를 팔아먹던 동창생 이 서울로부터 독립운동을 하자고 내려왔다. 알고 보니 경 무국의 끄나풀이었다. 또 한 번은 명색 모를 사내가 공산주 의인가 하자고─이것은 헌병대의 앞잡이였다. 이헌 형편이 니 시시각각으로 조여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출국의 결심이 여기서 다시 생기게 된 것이다.

이 불안한 환경으로부터 빠져 나가 어떻게든지 중국 땅으로 다시 건너 서서 연안으로 새들어가 싸움의 길에 나서리 라…… 냉엄함 자아비판을 하자면 역시 무서운 현실에서 도 망하자는 것이 최초의 동기였는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떠나 온 길이 남경까지 내려와서 오도가도 못하 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상해로 나가면 무슨 좋은 수가 생겨도 생기리라…… 그러나 실제 문제로 상해까지 가서 여러 날 묵어야 된다면 적지않은 숙비를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난제 가 앞을 가로막았다. 하기는 불의의 경우에 이용하려고 홍 삼 한 근에 시계도 두어 개 가지고 다니지만 그렇게 벌써부 터 처분해서야 앞길이 매우 불안스럽다.

어리석은 생각에 지리적 관계로 상해에서는 연안과의 연락 이 대단히 힘들리라는 추측도 들게 되었다. 그래서 3등차의 통로에 꿇어앉아 건들먹거리며 다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서주에서 하차하여 알아본 결과 S군의 실종을 또한 확인하 게 되었다.

이튿날 새벽녘 천진에 닿는 참으로 이번은 일본 조계에 있 는 우인 이 박사의 병원으로 찾아 들어갔다. 나의 중학 동 창으로 친족의 의업을 도와 주면서 조선학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온공독실(溫恭篤實)한 호학이다. 지난해 도중하였을 때 도 이 병원에 찾아와 한 방에서 여러 날을 같이 지내며 심 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소년 시절로부터 깊은 우정이 서려 있는 사이라 이심전심 (以心傳心)이었던지 내가 쓱 들어서니까 어떤 예감이 짚이는 모양으로 얼굴빛이 달라진다. 나는 그의 이층으로 인도되었 다. 이군은 내 결심이 굳음을 알고 이날 밤부터 나의 떠날 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머리를 앓게 되었다. 그러나 진찰 실과 서재 속에만 묻혀 있는 그에게 좋은 길이 있을 리 만 무하였다. 연안으로는 북경 방면에서 떠나는 이가 많다는 소문이 들린다고 하면서 그것도 자칫하면 횡횡하는 가공작 원(밀정)의 그물에 걸리기가 쉬운 모양이라고 염려한다. 여 기서도 나는 일상 하던 버릇으로 지도를 펴놓고 궁리하였 다. 연안이 그 중 가까워 보이는 역을 짚어 가면서 동포선 (同浦線)이라면…… 태원(太原)에라도 믿을 만한 이가 있다 면…… 북경서 그냥 산을 넘어 들어간다면……

굳이 연안 방면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유는 여기에 새삼 스러이 까놓을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 중국 땅에는 새로운 태양이 섬강녕변구(陝甘寧邊區)에 떠올라 광대한 구역을 밝히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장개 석의 독재를 반대하고 그 내전정책을 두들기며 혁명의 깃발 을 높이 들고 적에게 무장항변을 거행하면서 인민의 정부를 조직하여 농민을 해방하고 대중을 도탄 속에서 건져 내고 있다.

이네들과 같이 우리 조선의 우수한 혁명가와 애국 청년들 도 또한 총칼을 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국의 깃발이 해방구역의 산채에마다 퍼득이고 있 다. 생각만 하여도 가슴속이 뒤설레는 일이다.

조국을 찾으려 싸우는 이 전쟁마당에 연약한 몸을 던짐으 로써 새로운 성장을 얻어 나라의 조그마한 초석이라도 되고 자 함이었다.

둘째로 해방구역내의 중국 농민의 생활이며 인민 군대의 형편이며 신민주주의 문화의 건설면도 두루두루 관찰하여 나중에 돌아가는 날이 있다면 건국의 진향(進向)에 조금이라 도 이바지함이 있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낭만으로는 이국 산지에서 조국의 광복 을 위하여 적들과 싸워 나가는 동지들의 일을 기록하는 일 에 작가로서의 의무와 정열을 느낀 것이다.

마침내 나는 다시 북경으로 올라가 보리라 하였다. 떠날 때 이군은 옆구리에 만원 돈을 찔러 주며 모쪼록 성공하여 일로 평안하기만 축원한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호혈(虎穴)로 들어오는 마음으로 이 북경반점에 륙색을 부려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야말로 천행으로 여기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비밀공작원의 손길이 나에게 뻗치게 되었다. 아침부 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할일없이 나는 이날도 로 비에 앉아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궂은 비가 하루 종일 오기 때문에 모든 박스가 거의 만원이었다. 더구나 이날 밤 부터 호텔 지층 대홀에서 열리는 ××악단의 공연을 보려고 북경 시내의 조선 사람이 물밀듯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그 중 흔한 국민복을 비롯하여 양복, 중국옷, 심지어는 일본 유까다까지 튀어 들며, 부녀자는 너나없이 이방(異方)의 간 고한 살림살이에 부대껴 얼굴이 싯누런 할머니, 어린애를 둘러업은 아주머니, 양장이 어울리지 않는 창기(娼妓)들이며 호화로운 옷차람의 매소부(賣笑婦)…… 모두 들어오며 떠들 썩하니 고아 댄다.

”북경반점 생긴 이래 이런 고약한 손님들은 처음일걸!”

옆에서 한 사내가 히히덕거린다.

나는 뒤적이던 책을 덮어 놓고 멀거니 이들의 광경을 바라 보며 혼자 암연해지는 것이었다.

이때 난데없이 굴뚝처럼 키가 큰 사내 하나가 입에 문 파 이프로 연기를 내뿜으며 듬석듬석 중앙으로 다가와 끙 하더 니 안락의자에 걸터앉는다. 그러자 주위에 둘러앉았던 촉탁 이니 사업가니 밀정패들이 나 가까이 가서 공손히 인사를 한다. 아마 상당히 세도라도 쓰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좋은 국민복지로 물큰하게 내려씌운 모양이며 번지르한 구 두, 아편 부자로서는 너무 위엄기가 서려들고 흔한 촉탁감 으로선 지나치게 파격이며 사업가로선 적이 교격(驕激)해 보 여 이게 무슨 종류의 인간일까 하고 이월없는 호기심으로 유심히 훑어보게 된다. 이때에 동숙의 K가 어정어정 내려오 기에 누구냐고 눈짓으로 물으니까 저 사람이 바로 일전 말 하던 천진 시 정부 점령사건의 주역 V라고 한다. V라고 하 면 이런 전력이 있을 줄은 알기는 여기와서 처음이나 신문 에도 훤전(喧傳) 되던 이름이라 기억에도 새로운 존재였다.

한때는 일본 화족의 영양(令孃)과 결혼한다고 떠들더니 몇 달 안 돼 평양 명기와 또다시 조선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 다는 신문이 있었다.

수년 전에 내가 어떤 일본의 주간지에 기생을 주제로 하여 끄적거린 소설이 바로 이 명기 부인의 일이라고 오해되어 가정불화가 일 뻔하였다는 풍설까지 들은 바가 있어 혼자 몰래 쓴웃음을 짓게 되었다.

”그럼 대단한 역사적 인물이구려…… 저분이.”

K는 껄껄 웃으며 ”적어도 한때는 화북 농민 자치정부의 주석이니까……”

이때에 회색 헬멧을 쓴 셔츠 바람의 Y씨가 곰처럼 둥기적 거리며 기린처럼 사방을 둘러보면서 뚜벅뚜벅 들어온다. 들 어오며 손에 든 살부채를 연신 흔들어 보이며 이리저리 인 사를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나는 북경의 거인들과 한자리 에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Oct. 4, 2023, 9:59 a.m. 0 Report Embed Follow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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