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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young Jung


저자 : 이정림 저작물명 : 숨어 있는 나무 저작권 : 한국저작권위원회 창작년도 : 1990


Inspirational All public.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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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나무


이따금 나는 몇 해 전에 오대산(五臺山) 정상에서 본 아름드리나무들을 떠올릴 때가 있다. 산악회원을 따라 오랜만에 나선 산행에서 우연하게 그 나무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웅장한 모습에 그만 압도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을 오르면서 줄곧 크고 작은 나무들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나무에 대한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정봉(頂峰)을 지척에 둔 정상에서 숨을 토해 내느라 허리를 펴는 순간, 그 나무들은 나를 맞이하듯 내 앞에 우뚝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그 뜻밖의 거목들 앞에 잠시 놀란 가슴으로 서 있었다. 그만큼 그 깊은 곳에 그런 거목이 숨어 있는 듯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충격 같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서서히 어떤 알 수 없는 감동으로 내 마음에 물결처럼 번져 갔다.

대체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이 나무들은 이렇듯 첩첩산중에 뿌리를 박고 있었을까. 나무들이 서 있는 장소가 이런 깊은 산중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거목이 되기까지 베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나무가 만일 사람의 눈에 잘 띄는 그런 길목에 터전을 잡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밑동이 굵어질 때까지 베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나는 경외로운 마음으로 그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기(瑞氣)같이 서려 있는 그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나 자신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처럼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나무들은 마치 속세를 떠나 자신을 은둔시킨 어떤 철인(哲人)의 모습같이도 여겨졌다.

생각지 않은 장소에서 생각지 않은 거목을 만나고 온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나무의 모습을 내 가슴속에, 내 머릿속에 남몰래 간직해 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로서는 벅찬 사유(思惟)의 한 명제가 되었다.

작년 가을에는 온양에서 수필 세미나가 있었다. 세미나 일정을 마치고 상경하는 길에, 우리는 조선왕조 초기에 명재상을 지낸 맹사성(孟思誠)의 고택을 찾았다. 맹사성은 온양 사람으로, 자는 성지(誠之)요 호는 고불(古佛)이라 하는데, 세종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내면서 ≪태종실록≫을 편찬한 분이기도 하지만 청렴결백하기로 더욱 유명한 분이었다. 마침 문화부장관이 충남 사람이라, 맹사성의 고택을 고증을 살려 복원한 역사(役事)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여 우리는 일부러 그곳을 방문했던 것이다.

21대 후손이 된다는 맹 씨 댁 종손의 안내를 받아 옛집이 있는 윗마당으로 무심히 발걸음을 옮겼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그 마당 한쪽에 거목이 된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가을이라 잎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는데다가 마침 지는 해가 붉은 노을로 온통 나무를 뒤덮고 있으니, 그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에 저마다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나무들은 세종 때 맹사성이 손수 심은 것이라고 하니, 수령은 족히 630년이 넘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아야 할 만큼 키가 큰 나무는 높이가 35미터에 둘레가 10미터나 된다고 하니, 그 웅장함이 능히 도목(道木)으로 지정되고도 남을 위세였다.

그 댁 대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책을 읽었다는 청백리의 사랑방이나 구경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그렇듯 크고 우람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보게 되었다는 것은 또 한 번 내게 사유할 수 있는 감동의 여운을 안겨 준 셈이었다.

오대산 정상에서 본 그 아름드리나무들이나, 맹씨행단(孟氏杏壇)에서 본 그 거대한 은행나무들이 내게 그토록 감탄과 감동을 안겨 주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그 나무들이 사람의 시선을 많이 모으는 한길에 있지 않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그 고고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면, 아니 위대하다기보다는 그 인물됨이 참으로 진실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남의 이목에 띄지 않는 곳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을 저버리고 고절(高絶)하게 자신을 지켜 나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매달리게 된 것이다.

어느 곳 어느 시대에 처한 사람이든지간에, 사람은 누구나 자기현시욕(自己顯示慾)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남보다 더 돋보이고 싶고, 남보다 더 인정받고 싶고, 남보다 더 추앙받고 싶은 욕심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것에 속할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마다 욕심의 꼬리를 붙들고 이렇듯 바삐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깊은 산중에 숨어 있는 나무처럼, 이 욕심이 난무하는 시대에서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그라고 왜 세속적인 욕심이 없겠고, 그라고 왜 남보다 화려한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다만 그에게는 그 욕심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 있었고, 속기(俗氣)를 버림으로써 명징(明澄)을 얻는 지혜를 터득했음이 다르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고고함을 고독으로 안고 사는 삶의 경지가 실은 얼마나 충만한 삶인가를 일찍이 깨달았던 명철함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사람이 많은 만큼, 그 사람들이 영위해 가는 삶의 형태는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삶이, 어떤 인간상이 자신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관이나 생활철학과 상관되는 일일 것이다.

숨어 있는 나무, 그 나무의 의연한 모습이 이따금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것은 욕심을 앞세우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내가 낙오자처럼 뒤섞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숨어 있는 나무같이 고독을 고고함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내 속물근성의 잠재의식 때문일까.


(1990)

Sept. 27, 2023, 2:46 a.m. 0 Report Embed Follow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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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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