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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young Jung


저자 : 이정림 저작물명 : 문 안에 있는 자와 문 밖에 있는 자 저작권 : 한국저작권위원회 창작년도 : 1985


Inspirational All public.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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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에 있는 자와 문 밖에 있는 자


그들 두 사람은 마치 쌍둥이와 같다. 키도 나이도, 그리고 뺨에 볼그레한 물이 오른 홍조(紅潮)까지도. 여자애들처럼 갸름하고 곱살한 그 얼굴마저 너무도 비슷한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문이 바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 안에 있는 아이는 가끔 왜 자신이 자기와 너무도 닮은 문 밖의 아이와 날마다 힘을 겨루어야 하는지 모를 적이 많다. 맞서야 할 대상은 분명 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 뒤엉켜 피투성이가 될 때에도 안의 아이는 결코 밖의 아이를 미워할 수 없는 애정을 확인하곤 한다.

때로 자기의 돌팔매에 밖의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얼른 그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해 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전할 수 없는 것은 오늘 두 사람이 처한 위치가 다른 탓에 있다. 안의 아이는 얼굴을 싸안고 돌아서는 밖의 아이의 늘어진 어깨를 눈으로 좇으며 마음속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그러면서 밖의 아이가 아파하는 만큼 안의 아이도 함께 아픔을 느낀다. 그리고 눈물을 삼키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왜 이다지도 청명한가. 하늘이 맑은 만큼 그 처연(凄然)함이 외로움이 되는 것을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문 안의 아이는 문득 아침에 대문에서 배웅을 하던 어머니의 근심어린 얼굴을 떠올린다. 그저 묵묵히 아들을 보내던 어머니의 잔잔한 눈길을 생각하면서도, 날마다 가슴에서 일렁거리는 불길을 잠재우지 못하는 오늘의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 엄청난 매듭을 왜 꼭 자기 손으로 풀어야 하는가. 이 땅의 동량(棟梁) 같은 어른들이, 용하다고 하는 의사와 무당들이, 침으로든 주사로든 푸닥거리로든 그 어떤 방법으로든 살풀이를 해 주었더라면, 그는 지금 하늘만큼이나 맑은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 안의 아이는 스스로 고통을 이겨 내기에는 너무 힘이 부치고, 그의 속살은 여리기만 하다. 그는 아직도 어머니의 적삼 속에서 풍겨 나오는 모정의 살 냄새를 그리워하고, 어머니가 쓰다듬어 주시는 손길에 순한 아이처럼 잠이 들고 싶다. 그러면서도 그는 날마다 분노를 배우고 항거를 익힌다. 그리고 그가 겪는 고통을 그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에 소름 돋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문 밖의 아이는 언제나 문 안의 아이가 걱정이 된다. 안의 아이는 자기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돌멩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나 되는 듯이 곧잘 내휘두르지만, 밖의 아이는 그보다 더 큰 것을 갖고 있기에 늘 안의 아이를 염려한다. 안의 아이들이 닫힌 문을 향해 달려 나올 적마다 밖의 아이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가진 것보다 더 크고 무서운 것을 안으로 집어던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그것에 다치지 않도록 안에서 달아나는 아이와 똑같이 밖의 아이는 마음속으로 달음박질을 한다.

밖의 아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 지루한 줄다리기에서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떼밀고 막는 이 이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들은 문 안과 문 밖에 있다는 위치상의 차이만 다를 뿐, 마음은 수시로 그 물리적인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음을 알려 주고 싶을 때가 많은 것이다.

문 밖의 아이는 날이 새면 안의 아이를 찾아와 멀찌감치 마주 보고 앉는다. 안의 아이가 땅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밖의 아이도 따라 그렇게 하고, 안의 아이가 양지쪽에 앉아 차분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밖의 아이도 같이 책을 펴든다. 그러다가 그것이 무료해지면 책 속에 코를 묻고 잠이 든다.

꿈속에서 그는 어린 아내를 만난다. 그 아내는 저녁마다 남편이 성한 몸으로 돌아오기를 간구한다. 때린 자도 미워할 수 없는 이 아내는 남편의 상처를 눈물로 닦아 내며 역사의 하루하루를 함께 겪는다. 이 아내에게 꽃보다도 보석보다도 값진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남편이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리라.

밖의 아이는 꿈속에서 안의 아이와 손을 잡는다. 둘은 서로의 손이 똑같이 따습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그들은 얼싸안으며 함께 울기도 한다. 꿈속에서만 안아보는 우정이 서럽고, 그들이 똑같이 젊다는 것이 슬프며,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문이 존재함을 원망스러워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이 포옹을 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먼 대신, 같이 눈물을 흘리고 함께 역사의 한 조각을 밟고 서 있는 공간을 허락하였다.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날마다 울어야 하는가.

문 안의 아이가 문 밖의 아이를 부르듯이 비명을 지른다. 목은 터져 각혈이 되고, 그것은 드디어 몸에 파란 불꽃을 당긴다.

문 안의 아이는 이제 붉게 타오르는 하나의 꽃이 되었다. 젊기 때문에 그 꽃은 아름다웠고, 젊기 때문에 그 향기는 짙었다. 젊기 때문에 그 꽃은 슬픔이었고, 젊기 때문에 그 꽃은 통곡이었다.

그 꽃 앞에 문 밖의 아이는 무릎 꿇어 우정의 눈물을 바친다. 지금 그가 흘리는 눈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지금 그가 흘리는 눈물 속에도 이질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꽃은 영원히 아름다워야 하고, 눈물은 영원히 순수해야 한다.

아, 꽃이여, 눈물이여, 시대여!

그리고 그리스도를 무릎 위에 안은 피에타, 그 영원한 모성(母性)이여, 한국의 어머니여.

(1985)

Sept. 27, 2023, 2:39 a.m. 0 Report Embed Follow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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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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